서민 생활과 정서를 보여주는 풍속화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 풍속화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고분벽화, 고려 시대의 불화 등에서도 볼 수 있으며 그 맥은 조선 시대의 풍속화로 이어진다. 특히 민화에 보이는 풍속화는 주로 서민생활을 소재로 하여 풍습, 세태, 연중행사 등 여러 가지 생활상과 자연의 정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친근감이 있고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대부분의 민화 풍속도는 서민들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생활의 단면과 생업의 전경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주변의 배경을 대폭 생략하고 인물 중심으로 구성하는 특징이 있다.
중국과 일본에도 풍속화가 많다. 그림에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중국 당나라 때의 그림 궁중 사녀도와 연회도를 들 수 있겠다. 산업이 발달한 송나라에서도 서민의 생활 면모를 소재로 한 그림이 많이 전한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의 사치스러운 문화와 더불어 풍미했던 우키요에가 이 범주에 속한다.
풍속화는 조선 후기에 가장 유행했다. 조선 후기의 손꼽히는 풍속화가로는 공재 윤두서, 예천 김두량, 관아재 조영석,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긍재 김득신, 긍원 김양기, 혜산 유숙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화가의 작품 외에 명문이 없고 그리는 기법이 좀 미숙한 경직도, 평생도,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도 등으로 꾸며진 병풍이 상당수 전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풍속도에서 다루는 내용은 씨름, 서당, 논 갈기, 활쏘기, 행상, 무동, 대장간, 지붕 잇기, 빨래터, 제기차기, 연날리기, 소 타는 동자, 길쌈, 벼 베기, 주막집, 나들이, 신행길, 고기잡이, 가마니 짜기, 타작, 논매기, 모심기, 낮잠 자는 노인, 말발굽 징 박기, 엿장수, 원두막, 바둑 두기, 무당굿, 미역감기 등이다. 그들이 일하는 모습, 쉬는 모습, 나들이 가는 모습,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 등을 그리면서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풍속화는 대부분 평화로운 장면들이다. 괴롭고 슬픈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 시대 풍속도 중에서 경직도와 평생도는 풍속화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직도란 농경사회의 생업인 농사와 직조 혹은 잠업의 과정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흙과 함께 살고 있는 농부들과 아낙네들의 일하는 모습을 소재로 다룬 그림이다.
중국 주대에는 백성들이 가장 고되고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정치의 지상목표로 삼았다. 경직도는 바로 이러한 정치 이념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위정자는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의 소망과 농사일의 힘겨움을 소상하게 그린 그림을 병풍으로 꾸미거나 벽에 붙여 항상 가까이 둠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한편 올바른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을 일깨우는 거울로 삼았다.
신하들은 이러한 뜻을 담은 그림을 임금의 즉위나 생일 축하선물, 임금의 지방 순행 기념품으로 종종 바쳐 농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한편, 임금의 어진 사랑과 너그러움을 찬양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이 앉아 정사를 보던 정전의 보좌 뒤에 오대 명산과 해와 달을 함께 그린 일월오악도 병풍을 치고, 그 옆에는 농부가 농사짓고 아낙들이 베 짜는 모습을 그린 경직도 병풍을 쳤다. 이렇게 경직도는 위정자가 농민의 수고를 생각하고, 그들의 소박하고 성실한 삶을 통해 농자천하지대본을 명심하고 생활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그림이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경직도는 궁중뿐 아니라 관청이나 여염집에서도 걸어두고 곡식을 길러내는 농민들에 대해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하는 교훈적인 기능을 하였다.
민화의 경직도 역시 농민의 농사일을 그린 것인데 그 구도나 그린 필치가 전통회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 많다. 조선 시대 말기에는 민화로 된 경직도가 그림 파는 가게에서 진열, 판매되기도 했다.
평생도는 사대부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다. 돌잔치에서 시작하여 과거급제, 벼슬길을 거쳐서 환갑잔치까지 8폭에 나누어 그렸다. 이 그림은 어떤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그의 일생을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 선비들의 염원을 그린 것이다. 지금 전하는 것들은 작품마다 구도와 기법은 약간씩 다르지만, 그 내용과 배경은 모두 비슷하다.
보통 한 폭에 크고 작은 두서너 가지의 장면을 선이나 산, 건물 등으로 구분하였다. 첫 장면은 돌잔치 광경으로 색동옷을 입고 돌상을 받은 아기와 아기를 중심으로 둘러앉아서 기뻐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렸다. 두 번째 장면은 아이가 자라서 스승에게 글을 배우는 장면이다. 이어서 혼례 장면과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앵삼을 입고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백마를 타고 거리를 도는 유가 장면, 지방의 수령으로 부임하는 장면, 부임 후 관내를 순시하는 장면 등이 연속된다. 이렇게 벼슬살이의 과정을 거친 다음 장면은 회갑을 맞아 많은 자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축수하는 장면과, 노부부가 신랑 신부 차림으로 회혼례를 치르는 장면이다. 이어 금슬 좋은 부부로서 해로하고 장수하며 부귀 다자를 축하받고 있는 모습을 그렸으며, 마지막 그림에서는 늙어서 왕의 예우를 받는 봉조하의 내용이 그려진다.
조선 후기에 많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평생도는 작품의 내용이 당시 사대부들의 공사생활 풍속과 그 시대의 사회상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정서까지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옛 풍속을 고증할 수 있는 연구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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