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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로 보는 꽃과 새가 어우러지는 우리의 그림

by 아이와그림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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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조도의 꽃과 새, 어우러짐의 미학과 상징


화조도는 '화조'라는 말 그대로 꽃과 새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는 정경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화조도는 화훼도에서 분화 혹은 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으나, 그 내력이야 어떻든 민화 가운데 그 종류나 수량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꽃이 있으면 으레 나비가 있고 새가 있기 마련이다. 꽃밭에 나비나 새가 어우러져 사이좋게 노니는 장면은 그 생각만으로도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남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이런 정경의 아름다움을 시문이나 그림으로 표현해왔다.

민화도 예외일 수 없다. 매화, 동백, 진달래, 개나리, 오동, 솔, 버드나무, 해당화 등에 봉황, 원앙, 공작, 학, 제비, 참새, 까치 등을 물이나 바위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 화조도이고, 작약, 모란, 월계, 옥잠화, 수선, 들국화, 난초에 나비나 메뚜기, 꿀벌 등을 함께 그린 그림을 초충도라 하여 구분하며, 조류와 짐승, 즉 사슴, 토끼, 말, 소, 호랑이 등을 함께 표현한 것을 영모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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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에 나타나는 새는 반드시 암수 한 쌍으로 의좋게 노니는 것이 특징이다. 암수 한 쌍이 의좋게 노니는 모습은 부부가 화합하고 금슬이 좋은 모습에 비유된다. 화조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꽃이나 새를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옮겨놓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점도 느낄 수 있겠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꽃과 새의 조화로움과 행복한 모습의 이면에 담겨 있는 상징성을 읽어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조도에는 부귀와 장수, 시험 합격이나 승진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또한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가 일평생 사랑으로 맺어지길 바라는 마음, 재산이 모이거나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정겹고 후덕한 경사만 생기며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지속하기 바라는 마음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조도는 내용이나 발상 등에서 한국적인 심성과 염원이 가장 깊게 깔려 있는 그림이라 볼 수 있으며, 아무 방에나 격식 없이 장식될 수 있었던 길상화였다. 그래서 병풍이나 족자로 꾸며서 신랑 신부의 신혼방이나 마님이 거처하는 안방의 다락문 등에 장식용으로 썼다.

화조도에 등장하는 꽃과 새는 서로 같은 비중을 차지하며 늘 함께 어우러지도록 그렸다. 봉황은 오동과 대에 깃들고, 오리와 백로는 연꽃에, 학은 소나무에 깃들어 서로 짝을 이루면서 격을 맞춘다.

누가 정한 것인지는 몰라도 화조도 병풍은 예외 없이 소재의 배열에 일정한 틀이 있어, 첫 폭과 끝 폭에 각각 송학과 봉황이 그려진다. 송학의 의미는 늘 푸른 소나무의 절개 위에 장수하는 학의 고고함이 더하여진다는 뜻이다. 봉황은 무리 지어 살지 않고, 굶주려도 좁쌀을 먹지 않고 대나무 씨앗만을 먹고살며, 한 번 날개를 펴면 구만 리를 나는데 살아 있는 것은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병풍의 마지막 면에 봉황을 그리는 것은 이러한 봉황의 어진 덕을 본받으려는 뜻에서다.

이렇게 화조도에 그려지는 꽃들은 친숙하고 아담한 아름다움뿐 아니라 각각에 내재하는 상징성을 담아내고 있다. 새들 또한 단순한 새의 모습을 옮겨놓은 것만이 아니라 어떤 정신적인 염원을 고스란히 표현해주고 있다. 화조도를 올바르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자주 등장하는 새들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은 정통 회화와 민화에서 모두 자주 선택되는 소재다. 그림에 등장하는 학은 대부분 구름 속을 날고 있거나 소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림에서 소나무와 학의 관계는 기러기와 갈대, 백로와 연의 관계처럼 거의 하나의 틀로 정형화되어 있다.

학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소나무와 함께 '학수 천세'라는 말처럼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 다른 하나는 벼슬이나 관직과 연관되어 입신출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학이 소나무와 함께 그려져 장수를 표현하는 그림일 경우는 학수 송령 도라 불린다. 장생의 의미로 학을 그릴 경우에는 소나무 대신 바위를 그리기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학은 날짐승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새로 은하수까지 날아오를 수 있고, 1,600년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암수가 서로 정하게 마주만 보아도 잉태하고, 신선이 타고 다닌다고 했다. 이러한 일설로 인해 옛사람들은 하늘 높이 비상하는 학을 매우 성스러운 존재로 인식했고 천 년을 사는 장수의 상징으로 여겼다.

학과 소나무를 그린 그림에 일품 대부라는 화제가 붙은 것이 있다. 일품은 조선 시대 벼슬의 가장 높은 품계를 이르는 것이다. 학이 다른 날짐승과 달리 청순하고 깨끗하여 외진 곳에서 조용히 은거하면서 유유하고 점잖게 사는 모습이 은둔하는 군자의 모습과 닮았다는 점 때문에, 새들 중에서 가장 높은 품계를 지니는 일품의 새로 우러렀다. 또한 벼슬아치의 관복 흉배에 문관인 경우 학을 수놓았으므로 학은 곧 관직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학과 소나무의 화제에 일품 대부라 쓰는 것은 진시황이 사냥을 나갔다가 비를 만나 어떤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해 머물렀는데, 이 소나무를 고맙게 여겨 '대부'라는 품계를 내렸다고 하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부는 사품 이상에 붙이는 호칭이다. 조선 시대 세조 임금이 내렸다는 속리산의 정이품송의 정식 관직명도 정이품 정헌대부이다.

한편 파도치는 바다에 서 있는 학을 그린 그림으로 일품 당조라는 것이 있다. 일품 당조는 조정에 들어가 관직이 일품에 오른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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